최근 다음 아고라에 '왜 청와대인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매우 바람직한 토론이지만 동시에 하나둘 천천히, 본문부터 답글까지 살펴보면,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왜 청와대인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굉장히 복잡한 일이다.
글이 길어질 것 같다.
1. 청와대가 시위와 관련하여 상징되는 의미
2. 역사적으로 각종 시위, 집회들과 청와대 간의 관계,
3. 다른나라의 시위와 대통령 관저간의 관계
4. 폭력과 비폭력,
5. 합법과 비합법,
6. 더불어 지금의 촛불문화제의 정체성,
등등 수 없이 많은 하위 맥락을 고려해야 '왜 청와대인가'에 대한 논의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역사적인 객관적 증거 없이 쓰는 글은,
역사와 관련이 있되 주관적인 것이고, 맥락이 존재하되 개인적인 것으로 머무믈 수 밖에 없다.
덧붙여 얼마나 많은 추천을 받느냐 하는 것은
해당 글이 논리적이고 타당하다는 것과 관련이 있기도 하지만, 위에서 제시한 각자가 갖고 있는 역사와 배경, 간 주관적인 지식에 얼마나 합치되느냐, 다시말해 얼마나 공감이 되느냐가 (추천의)가장 큰 요인이다. - 우리는 이러한 사태에 이르기까지 정부와 우리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고 무엇이 문제가 되며 어떤 반성을 하고 어떠한 비전을 제시해야 하느냐의 건전한 토론보다는, 전경이 얼마나 사람들을 잔인하게 진압하고, 흥분한 시위대가 얼마나 과격하게 시위를 하느냐 혹은 귀여운 어린아이가 [엄마 미국산 소고기가 싫어요]라는 피켓을 들고 얼마나 귀여운 포즈를 짓느냐에 열광하곤 한다.-
위에서 든 예시 말고도, '왜 청와대인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면 동원되어야 할 관련 지식과 맥락들, 철학과 역사가 필요하겠지만, 우선은 위에 제시한 기준들을 바탕으로 논거를 진행해보고자 한다. 이후 이 물음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건전한 토론이 진행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겠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그 스스로가 이야기 했듯이 머슴이다. 국민들의 의견을 대신하여 대내적으로 국익에 이익이 되고, 대외적으로 자주적인 외교와 국방을 이룩하는데에 대리권을 갖고 있을 따름이다. 미국산 소고기 문제는 지난 정부부터 계속되어 왔지만, 유독 이번정부에, 그것도 초반부터 화끈하게 불타오른 것은,
지난 정권의 대표적 american 김종훈 때문도 아니고, 최근 슈퍼스타가 된 정운천 때문도 아니다. 이러한 행정부의 수장들은, 독자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는 일종의 대리인이기 때문에, 총수권자의 지휘하에 직함으로 존재할 수 있을 뿐이지, 개인으로 존재하기는 힘들다. 그 직함이 개인으로 존재하는 때는 총수권자와 필적한 권력을 가진 세력 즉 당이 뒷받침 될 때만이 가능하다.
한마디로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김종훈이나 정운찬은, 개인적 처신과 태도, 가치관에도 문제가 분명히 있지만, 대통령 혹은 거대 정당의 하부구조라는 것이다. 특히 이번 쇠고기 관련한 외교는, 당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추진한 사항이 아니니만큼, 보다 상위권력인 대통령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여러모로 합당하다.
과거 6.10항쟁이 청와대로 가지 못한 이유는 폭력으로 무장한 권력앞에 더이상 피를 흘려서는 안된다는 자성과 두려움이 동시에 존재했기 때문이었고, 항쟁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수도 곳곳에, 전국 곳곳에 사람들이 집결했기 때문이었다.
제작년(이 맞나;) 프랑스의 cpe 투쟁때 프랑스인들이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으로 향하지 않은 이유는 엘리제 궁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 보다 훨씬 확실하고 커다란 파급 효과를 미치며 위협적인 투쟁을 전개했기 때문이다.(철도점거, 대형마트 점거, 대학교 점거, 에펠탑 점거 물론 모두 불법점거였다.)
때문에 청와대로 가는 이유는, 잘못을 한 사람에게 직접 대놓고 의사를 전달하기 위함이라는 단순한 결론으로 귀결된다. 윗집에서 아이들 어른 할거없이 뛰어다니고 시끄럽다면, 윗집에 가서 항의할 일이지 아파트 현관이나 단지 입구에서 초를 드는 것은 여러모로 힘도 빠지고 불편한 일이다. 물론 윗집에 가서 항의할 경우 얼굴을 붉히며 언성이 높아질 염려가 있다. 동시에 그곳이 어느곳이든 간에(그사람 눈에 보이는 곳이라면 더 좋겠지만...)촛불을 든다면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는 있으나, 무작정 촛불만 든다면 잠시 얼굴 붉히는 것으로 끝날 일이 영영 기약없이 길어질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비폭력'을 견지하기 위해, 윤리적이고 도의적으로 합당한 명분을 지키기 위해 멀리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폭력에 대해서는 이후에도 이야기할테지만- 신양씨가 '왜 말을 못해!'라며 침튀길 일이다.
지금의 싸움은 참으로 불리하다. 대통령은 대통령 관저에 앉아 언제 끝날지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하는 반면,-그 똑똑한 사람이 왜 배후를 들먹이고 돌발발언을 하여 꺼질 촛불도 다시 켜고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게 그이의 매력이긴 하지만- 우리는 점점 지쳐가고있다. 인정할건 인정하자. 그는 우리에게 힘까지 주고 있는데, 우리는 여러모로 삐걱대고 피곤에 지쳐가고있다. 체력이 고갈되고 초살돈도 빠져나간다.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다. 현재 1000일 넘게 회사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고 있는 가산디지털단지에 '기륭전자'라는 곳이 있다. 1000일이라는 시간동안 갖은 합법, 불법적 시위도 강행하였고, 적으면 10명에서 많으면 수천명에 이르는 조합원과 협조자들이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집회도 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분들은 아직도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분들의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빼앗긴 입장에서, 피해를 본 입장에서 그 권리를 다시 되찾기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위대의 힘은 빠질 것이고 분명 체념하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며, 회의론이 일 것이다. 결국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게 되거나, 스스로 타협하여 마무리 될 것이다. 어떤 폭발적인 지점이 없는 대한민국의 투쟁은 대부분 실패했었다.(물론 나는 이기는 중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기 위한 청와대 행이다. 이 지긋지긋한 촛불, 이제 그만 끄고, 안심하고 밥을 먹어야한다. 순진하게, 이것이 민주주의이고 이렇게 하면 언젠가 들어주겠지 식의 발상은, 아름답지만 승리의 충분조건으로는 부족하다. 빠른 시간내에 확실하게 끝내는 방법은 대통령의 얼굴을 마주하고 손을잡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시위단체들이 청와대행을 목표로 시위를 진행했었다. 햇수로 4년간 수많은 집회판을 들락거렸지만, 이렇게 가까이 청와대까지 가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왜 그들은 청와대로 가려 했었고 번번히 좌절했었나. 그리고 청와대로 가면 무엇을 할 것인가.
다음 아고라에 청와대행 찬성론자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왜 청와대로 가느냐는 질문은 왜 촛불을 드느냐 만큼이나 당위적인 질문이다.
현문이지만 애매한 답이었다. 글쓴이의 입장에서는 당위겠지만, 당위적이라는 근거를 갖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저 대답이 그저 감상적인 copy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촛불을 드는 것에 아무런 저항감도 의문점도 들지 않은 것은, 촛불이 굉장히 세련되고 발달된 시위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현상으로서 정체성을 증명하는 촛불은,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얻어낸다. '청와대행'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의문을 갖는 까닭은 그것이 세련되보이지도, 의식에 있어서 일직선상으로 연결되지도 않기 때문이고 덧붙여 청와대로 가는 행위가 개인적으로 거부감을 갖을 막연한 두려움, 비도덕, 불법등의 개념과 앵커되있기 때문이다.
새내기때 농민 두분이 전경의 방패에 맞아 돌아가셨었다. 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같은 공간속, 같은 시위장소에 있었었다. 선배에게 물었다. '저렇게 맞아가면서, 청와대에 가면 뭘 할건가요? 대통령이라도 끌어내려 린치라도 가할건가요?' 라고 물었었다. 그 때 선배의 대답은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한번도 가본적이 없어서' 였다. 당시에는 웃음으로 넘겼지만,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질문이다.
흔히 학내에서 등록금이나 복지와 관련하여 학교측에 학생측의 입장을 전달할 때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 점거로 시작되는 시위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점거는 해 보지 않았지만, 학내에서 집회를 마치고 행정관으로 학생들이 이동한 적이 있었다. 규모가 작은 학교이고 개교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학교여서 그런지 몰라도 큰 제지가 없었었다.-_-; 마침 총장도 출장중이라 자리에 있지 않았다. 맥빠지는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학생들의 목표는 행정관 점거도, 점거중의 학교 직원과의 한판 대격돌도, 총장 감금이나 린치도 아니었다. 물론 총장을 만나서 (토론을 통한) 담판을 지을 수도 있었지만, 그날은 어디까지나 '경고'차원의 행정관행이었다.
그날 학생들의 손에는 손바닥만한 빨간 도화지가 들려있었다. 레드카드였다. 레드카드를 총장실을 비롯한 행정관 전체에 붙였다. 레드카드에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적어 의지를 행위로 보였다. 비슷한 예로, 예전에 교육청 앞으로 시위를 갔을 때에는 교육청 앞의 가로수에 노란색 리본에 우리의 요구사항을 적어 매달았었다. 감상적으로 몰아가려는 것은 아니지만, 한겨울에앙상한 나무에 달린 리본은 은행잎이 달린것처럼 멋있어보였다.
말하고 싶은것은 위에서 다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승리와 확실한 요구관철의 기억을 자신만의 기억속에, 각자의 기억속에 성기를 잡고 자위하듯 남기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구체화된 상징으로 남기길 원한다. 상처입은 시위대와 전경, 온통 락커칠된 전경차보다 청와대 주변의 가로수에 노란 리본이 걸리는 것에, 담벼락에 국민들의 요구의 메시지가 붙어있는 데에서 더욱 뿌듯해하며 확실히 의견을 전달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부분 중 하나인데, 추상적인 감상이나 생각들이 구체적인 사물로 옮겨졌을 때의 파급효과는 대단하다. 때문에 전경에 분노한 어떤 시민이 전경을 육시하는 생각보다는, 전경을 포위(그게 본대로 가기위해 길을 터주는 중인지, 정말로 린치를 가하기 전인지는 상관없다)한 한장의 사진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파급효과가 크며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구체적인 승리의 증거물로 100명을 베었다는 조자룡보다 10개의 적병사 코를 꿰어 허리춤에 찬 일개 병사가 더 큰 승리를 한 것으로 보이며, 동시에 더 두렵다.
더 두렵다는 것은, 단순한 상황의 인지를 넘어서 상상을 하기에 생겨나는 지각이다. 사람들이 청와대 앞에서 일종의 퍼포먼스-도로와 담벼락에 그래피티를 한다던지, 인간띠잇기를 한다던지, 리본을 묶는다던지-를 하고, 그 장면과 결과물을 매체가 담아 당사자들과 제 3자에게 보인다면, 그 장면, 상황이 인지하는 것과 이어서 연상되는 상상은 '이길 수 있겠다'를 넘어서 '이겼다'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퍼포먼스의 장소로 시청은 부적절하다. 시청은 청와대보다 덜 상징적이고, 결정적으로 대통령은 청와대에 있다. tv로 보는 것 보다 실제 두 눈으로 보는 것이 훨씬 실감난다. 그것이 자신의 일부인 청와대에 가해진다고 하였을 때 패배감과 동반하여 따라오는 공포감은 실로 대단하다. 대통령에게 경고를 하고 빠른 시일 내에 해결을 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음 대선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초를 든 것이 아닌가?
그러한 승리의 경험을 만들어 주고싶지 않기에, 권력은 기를쓰고 청와대 앞을 지키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해 척박한 인식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 전경차들이 하나둘씩 부서져 나갈때마다 그들은 미소를 지을 것이다.(분명 이용당할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이용당하고 있다.)
청와대로 향한 시위대 중 극렬한 일부가 청와대에 진입을 시도하면 사태가 걷잡아질 수 없다는 논의는 무의미하다.
첫째로, 권력이 가만히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시위대를 저지할 실력이 있다. 다만 그 실력은 온전히 민중들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로 난입하려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분명 실력행사가 벌어질 것이고, 결과는 참패이다. (그 실력행사에 대해 나머지 시위참가자들이 분노를 느끼기에 우린 이미 너무 많이 맞았다)
둘째로, 시위참가자들의 민주주의의식을 뭉개버리는것이다. 아무리 꼴통이지만 한나라의 총수권자에게 직접적인 물리적 위해를 가하는 것은, 같은 시위참가자의 입장을 넘어서 한사람의 국민으로서도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다. 당연히 자정 작용이 일어날 것이다. 낙관론이 아니냐고? 요즘 집회 분위기를 봐라 끌려나온 전경에게 손이라도 갖다댔다간 내가 끌려나갈판이다.
셋째로, 적절한 사전논의와 시위진행방향이 알려진다면, 이를테면, 인간띠잇기나 리본묶기같은 구체적인 행위지침이 퍼진다면, 아무리 과격한 시위자라도 어느정도 인정하고 따를 것이다. 이것도 낙관론같다고? 우리가 흔히 가장 급진적이라고 생각하는 민주노총이나 전농에서도 이러한 퍼포먼스에 상당수가 동의하고 이러한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우리가 보지 못하게되어버렸기 때문이지.
진입하는순간(그곳이 열받지만 청와대이기때문에) 패배한다는 것을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고, 그 이성은 이성이 날아간 사람을 제지할 만큼 힘이있다. 그러기에 다시한번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나온다.
때문에 시위에 가장 앞서가는 사람은 정확히 청와대에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사전에 논의를 하고 공표할 필요가 있다. 이 논의는 상당히 즐거울 것이며 파급이 클 것이라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단식이나 자해같은 극단적인 퍼포먼스는 쉽게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퍼포먼스는 즐겁고 유쾌하게 민주주의를 말하는 일이지만 자해나 단식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다른나라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크게 이슈가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대해 지난 100분토론에서 야당의 모 의원이 한 발언은 새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흔히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된 나라라고(오해하고)여기는 미국의 백악관 앞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시위를하고 집회를 한다.
수구보수들이 그토록 찬양하는 미국에서는 가능한데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고? 그야말로 국민들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우리나라사람들이 더 불같고 과격하기 때문에 우려가된다는 논의는 촛불앞에 타버려 날아가버린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프랑스의 지난 cpe투쟁에서 시위대들은 엘리제궁으로 향하지 않았다.(관련 자료를 여러가지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그보다 더 극단적으로 여겨지는 방법들이 난무했기 때문에) 그들은 엘리제궁 대신, 더욱 직접적이고 타격적인 방법을 택했다.
학생들의 대학점거, 철도와 역사점거, 대형마트점거, 각종 운송수단 점거, 심지어 에펠탑까지 점거했다. 물론 불법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시위자체가 불법적으로 진행 되었어도, 경찰들의 적극적 개입은 거의 없었다. 또한, 일반 시민들은 경제적 손실의 책임을 시위대가 아닌 정부에게 물었다. 또한 동시에 시위가 있을 경우, 언론이나 기타 토론의 장에서는 폭력시위여부에 대한 초점은 결과적인 시각이 아니라, 구조적 원인발생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시위의 폭력성에 대한 책임의 여부는 정치권에 쏠려지도록 만들었다. 왜냐하면 시위가 발생하기까지의 구조적인 관점에서 정부가 일차적인 책임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의 시위형태는 굉장히 신사적이고 더이상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처연하게 평화적이다.-라고 생각한다- 유럽 유통의 중심인 프랑스가 마비되어 막대한 국익손실이 초래되었지만 80%에 이르는 시민 대다수는 지지했었고, 역시나 정부의 조속한 처리를 바란다는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왜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이러한 여론조사를 한차례도 시행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여론조사로 당선된 대통령에게 여론조사로 어퍼컷을 날리는 것은 역설적이게 재밌다. (여론조사 결과가 cbs에서 나온 것 밖에 보지 못했다.)
폭력과 비폭력에 대해선 위에서 언급한 것과 더불어 bongnine님의 블로그에 개인적으로 남긴 글로 갈음하고자 한다.
개념글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고심해서 썼음 ㅎㅎ
글쓰신 분이 정의하신 폭력/ 비폭력의 정의가 굉장히 자의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도로를 점거하여 통행하는 시민들에게 불편함을 끼친 행위를 폭력이라고 가정한다면, 확장하여, 시청광장 안에서 촛불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고 수많은 오물 폐수와 종이조각들, 과자부스러기나 빵봉지가 남아있었다면, 깨끗한 시청을 보길 원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나 시청광장을 청소해야하는 청소부의 입장에서는 폭력일 수도 있겠죠. 더욱더 확장해서 폭력을 규정하여 본다면, 평소에는 한산한 지하철에서 퇴근을 하여야 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시청으로 발길을 향한 결과 교통체증이 일어나고 꽉막히는 지하철에서 퇴근을 해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시청앞에 모이는 것 자체가 폭력이겠지요.
이처럼 폭력/ 비폭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폭력도 되고 비폭력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글쓰신분이 정의한 폭력은 도로를 점거하여 통행하는 시민들의 발목을 붙잡았다는 것이겠네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도로를 점거한 행위는 글쓰신 분의 입장에서만 폭력이라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시청광장을 청소하시는 분들은 도로점거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시청앞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이처럼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폭력/ 비폭력이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겁니다.
결국 글쓰신 분은 폭력/비폭력의 정의 준거를 자신에게만 맞추어놓고, 그 정의에 동의하지 않고 비방을 하는 사람들을 마녀사냥이라고 편협하게 생각하시지는 않으신지요? 자기가 정의한 자신만의 자의적인 폭력/ 비폭력의 정의를 다른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것은 물론 여기에 글쓰신 분을 무분별하게 비방하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이구요. 단어를 자의적으로 정의하고 그것에 맞추어 토론을 하자는 것은, 자신이 정의한 그 정의에 벗어난 폭력과 비폭력에 대해 논하는 것은 반칙이라는 듯한 태도는 자기위주의 유아기적 발상같아 보여서 아쉽습니다.
중요한 것은 폭력/ 비폭력을 야기케 하는 중요 문구가 이 블로그의 제목이기도 한 '불법'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논의를 더 진행하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불법이기 때문에 폭력이라고 생각하시는건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실제로 불법과 폭력은 은연중에 맞닿아 있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글쓰신 분의 좁은 생각이 다시한번 드러난다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글쓰신 분이 생각하고 정의하는 '불법'은 어디까지나 경찰측에서 설정하는 자의적인 해석을 무비판적으로 갖다 쓴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위에서도 한 분이 언급하셨듯이 헌법에는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집시법은 하위법으로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위한 하나의 구조정도의 구실밖에 하지 못하지요. 이미 언론에서도 몇차례 노출이 되었듯이 몇몇 변호사분들은 어느 부분이 어떻게 해서 불법이 아닌지를 헌법에 의거하여 조목조목 밝혔었습니다. 즉 도로까지 나와서 시위를 하는 행위는 집시법의 좁은 틀로 보자면 불법일 수 있으나 상위법인 헌법으로 보면 원칙에 어긋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고, 더더군다나 그 불법이라는 용어는 경찰측에서만 사용하는 자의적인 용어라는 사실입니다. 시위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찰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판단한 '불법'이라는 용어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구요. 유독 글쓰신 분만 다른곳에서는 지나치게 비판적 시각을 곤두세우시면서, '불법'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고 말하시는지요? 쿨한척 하려는 건지, 나름 이 사태에 대해 비판적 해석을 해야한다는 의무감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논리적으로 오류가 많고, 정의 자체가 편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글에서도 언급이 되었지만, [너희들이 이야기하는 국민 다수가 진정한 국민 다수냐]를 걸고 글을 전개하는 편이 훨씬 나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비폭력에는 동의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폭력/비폭력의 범주는 글쓰신분과 분명 다르겠지만, 저도 요즈음의 시위에 약간의 폭력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래야 인정하지 않을수가 없네요. 저도 참 궁금해요. 어떻게 하면 더 평화적으로 시위할 수 있는지. 적어도 지금의 촛불은 화염병과 쇠파이프보다는 비폭력적이고, 꽤나 세련되게 진화된 민주주의의 형태인데,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있다면 훨씬 좋겠죠?^^
이 글을 쓴지도 몇일이 지났고, 시위의 양상은 많은 부분에서 변모하였기 때문에 맞지 않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누가 보기에도 '폭력'이 현장에서는 진행되고있다. 물론 이러한 폭력에 대해서는 우리 나름대로 자성하고 반성하여야한다. 그것을 외면하고 피해가는 순간 골은 깊어진다. 그 때문에 올바른 토론이 중간에서 깨지는 것이다. 다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일부 폭력적인 모습은 시위의 한 '현상'이고 단편일 뿐이다. 우리는 왜 그러한 폭력이 일어났는지와 그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이야기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폭력이니까 해서는 안된다나 저들이 폭력으로 대했으니 우리도 폭력이다 식의 흑백논리로는 어떤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권위와 상징, 저항에 대해 이야기 하고싶다. 청와대는 그저 대통령이 집무를 수행하는 중심지인 관저이지만, 그것의 상징효과는 어마어마하다. 그 어마어마한 '권위' 때문에 우리는 이성적으로 이야기 하지 못하고 경외하고 동시에 곡해한다. 왜 서울시청, 구청, 교육청 앞의 시위는 가능한데 청와대는 불가능한가는 집시법만이 이야기 할 뿐이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 청와대 반경 100m에서는 집회 금지라는 집시법또한 무슨 근거로 그러한 법을 만들게 되었느냐에 대한 고찰과 재논의가 필요하다.
그 대단한 권위때문에 우리는 은연중에 '청와대만은 안된다' 혹은 '청와대는 좀 심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왜 청와대여야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은 바꿔말하면 좀더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왜 청와대는 안되는가'로 시선을 바꿔보자. 우리가 지금까지 알게모르게 훈육당했던 권위도 빼고, 군사독재의 잔재도 빼고, 그저 '지금 이 모든 일의 근본원인인 대통령이 집무하기 위해 머무는 청와대'로만 이야기해보자.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청와대가 안되는지는 분명하게 밝혀진다. 청와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요즘 노무현전대통령의 대선연설이 지식채널-e를 패러디한 따라채널-e라는 영상물로 제작되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노무현전대통령의 연설 취지는 하나이다. '부당한 권력에 대해 당당하게 가슴펴고 이야기하자'이다. 우리 이제 당당하게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모든 권력의 상징이자 총체인 청와대앞에서 당당하게 이야기하자. 청와대여서 안될 이유는 없다. 청와대여야 하는 이유는 많고 청와대여야만 하는 이유도 많다. 그리고 우리는 정당하다.
작금의 촛불은 쇠고기를 넘어 잘못된 권위에 대한 정당하고 정당한 대항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촛불이, 청와대 앞에서 평화적이지만, 그간의 잘못된 권력에 대한 일종의 경종으로 타오르길 바란다.
그리하여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 그 시작은 청와대 앞이다.
도움글/사이트
610.or.kr
http://blog.ohmynews.com/palestine
http://ozzyz.egloos.com
위키백과
청와대로가야하는이유 - 아고라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1756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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